물들지 않고 물들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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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7
Monday 11:17
성서의 가름침과 기독교 정신이 어떤 것인지 나는 아직까지도 혼란스럽다. 성서에는 '땅을 정복하라."라든가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다."라는 파격적인 말도 분명히 있다. 기적으로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기적으로 사람을 몰살해 버리는 대목도 있다. 선악의 객관성은 완전 무시되고 오직 유대인과 유대교 외에는 어떤 것이든 적이 되고 악이 되고 멸망의 대상이 되었다. 예수는 이런 유대교의 율법과 성전(聖殿) 중심의 권위와 독선을 깨뜨리러 세상에 왔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을이 사람을 위해 있다는 생명 존중의 종교로 바꿔 놓은 것이다. 그는 들에 핀 꽃 한송이가 솔로몬의 영광보다 아름답고, 떠돌아다니는 새들도 하느님이 기르신다는 자연과의 공생 관계를 가르쳤다. 복음은 인간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들에게까지 두루 내려진 것이다.
예수가 마지막 만찬을 차린 곳은 호화로운 어느 성전 예배실이 아니다. 거기서 먹은 것도 일류 요리사가 만든 호화 음식이 아니다. 가난한 마가의 비좁은 다락방에서 역시 가난한 사람들이 먹던 보리떡과 포도주 한 잔이었다. 예수는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이렇게 눈물겹도록 힘겹게 살았다. 눈먼 거지의 빛이 되고 절름발이와 앉은뱅이와 난쟁이의 친구가 되었다. 세리와 창녀와 간질병 환자와 귀신 들린 자와 남편에게 버림받고 이웃에게 따돌림받은 이들의 따뜻한 친구가 된 예수, 그가 우리의 구세주인 것이다.
내가 교회에 나가고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가 사랑했던 들꽃 한송이를 나도 사랑하고 싶고 그가 아끼던 새 한 마리를 나도 아끼며 살고 싶기 때문이다. 구태여 큰 소리로 외치며 전하는 복음이 아니라 바로 지금 내 곁에 함께 있는 가련한 목숨까리 다독이며 살아가고 싶을 뿐이다. 슬플 때 함께 슬픈 노래 부르고 기쁠때 함께 기쁜 노래 부르면, 그것이 찬송이 되고 기도가 되고 예배가 되는 것이다. 구하기 전에 하느님은 우리에게 모든 걸 주셨다.
푸른 하늘과 해와 달과 별과, 철마다 피고 지는 꽃과 나무와 열매들, 아름답게 우는 새소리, 시원한 바람과 깨끗한 물과 그리고 이웃을 주셨다. 검은색과 흰색과 노란색의 사람들이 서로 바라보며 웃으며 살라고 이 땅 위에 각자의 자리를 마련해 주셨다. 거기서 땀 흘려 일하며 살아가는 것만이 우리들의 몫이다. 더 이상 무엇을 달라고 큰 소리로 외치며 기도할 이유가 없다. 그렇게 살 만큼 살다가 죽으면 되는 것이다. 그게 바로 하늘나라며 인간들이 영원히 살이갈 바른 삶이다.
인간의 눈으로 봤을 때는 흉측한 것이더라도 하느님 보시기엔 아름답기 때문에 만드신 것이다. 이 세상을 인간의 눈으로만 보지 말고 하늘의 뜻을 생각하며 살면 우리들의 세상은 훨씬 아름다워 질 것이다.

<빌뱅이 언덕>을 읽다 기억하고 싶어 <새가정, 1993>에 쓰셨던 권정생 선생님의 글을 옮겼습니다. 권정생 선생님의 글을 읽다보면 생각없이 받아들이며 살았던 것들이 또렷이 보입니다. 분명, 물들지 않고 물들이며 사신 분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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