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돌담을 타고 피던 능소는 아름답기보다 무서웠습니다. 한여름 손을 대기도 뜨겁게 달궈진 돌담 위에 아무렇지도 않게 흐드러진 크고 탐스러운 그 진한 주황이 붉은 장미보다 더 징그럽기까지 했습니다. 아마도 너무 강렬해 그런 기억으로 남았던 것 같습니다. 능소화(凌霄花)의 한자는 업신여길 능(凌), 하늘소(霄)를 씁니다. 하늘을 업신여긴다는 퍽이나 건방진 뜻입니다. 장원급제를 한 어사의 화관을 장식해 어사화라고도 불렸고 양반가에 많이 심어져 양반들의 꽃이라 불리기도 했다 합니다. 한여름 그 뜨거운 열기를 이기고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모습 때문이었겠지요. 자세히 보아야 아름답다는 말도 있지요. 어린 시절의 기억은 차츰 변해, 지금은 능소를 보면 기특하고 소박한 모습이 사랑스럽습니다. 벚꽃도 아직인데 벌써 능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