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가 곧 명상이 되기도 합니다 고향에 내려갈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읽을 책도 챙기고 카메라와 배터리, 잠옷, 선물, 용돈 봉투 같은 것들입니다. 걷기 편한 신발도 따로 챙기고 챙 넓은 모자와 이어폰, 모아둔 플레이 리스트도 있습니다. 가족들과 만나 맛있는 것 먹고 이야기 나누는 것도 좋지만, 오랜만에 고향을 조용히 산책하는 즐거움의 크기도 작지 않습니다. 매일 보는 풍경과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는 풍경이 다르게 다가올 리 없지요. 걷기…
참을 만큼 참으신 모양입니다 오전까지 흐리던 하늘이 말갛게 개고 흰구름 몇 점 떠 있습니다. 태풍이 지나간 모양입니다. 집 옆으로 흐르는 삼룡천 물소리도 잦아들고 황톳빛 물 색깔도 점점 투명해지고 있습니다. 환경 파괴로 인한 기후 변화는 날로 사나워지는데 책임 있는 나라나 기업보다 약하고 죄 없는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혹한 것 같아 자연재해에도 불편한 마음이 남습니다. 天地不仁 以萬物爲芻拘 (천지불인 이만물위추구)라 했던가요. 참을 만큼…
문득 고마웠습니다 보일러에 문제가 생겨 A/S를 신청했습니다. 토요일이라서 오실 수 있을까 했는데 점심쯤 오실 수 있다 합니다. 보일러를 살피다 보니 8년 전에 설치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오류코드를 보니 점화플러그에 문제가 생긴 거라면 부품만 교체해도 되겠지만, 무상수리 보증기간이 3년이니 제 수명을 다 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깨끗하게 아끼며 잘 사용해야 하는 것은 사람 몸 만이 아니겠지요. 그동안 구석에서 조용히 집안을…
말할 필요 없지요 오후에 두 시간쯤 카페에서 그림을 그리고 왔습니다. 빨리 완성하고 싶은 급한 마음이 일면 디테일이 뭉개져 시간을 정해 꼼꼼하게 그리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스케치 없이 직접 드로잉 하는 단계까지는 아직 멀었지만 기본적인 스킬들이 손에 익으면 그리고 싶은 것들을 무리 없이 그릴 수 있겠지요.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도 어려운데, 생각이나 개성을 담는 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 말할 필요 없지요. 드로잉,…
더 밝게 보입니다 그림의 좋은 점은 사진과 달리 강조하고 싶은 것만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사람이 많은 풍경도 그리고 싶은 것만 그릴 수 있고, 더 크게 더 작게 그릴 수도 있지요. 사진이 영감과 성실한 기다림의 영역이라면 그림은 그것들과 더불어 상상력과 덜어내기라고 할까요. 그림을 그린 후부터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이 사진기를 처음 들었을 때처럼 새롭게 다가오는 느낌을 받습니다. 새로운 눈을…
받아들여야 할 때 같습니다 오랜만에 매듭을 묶었더니 잠시 머뭇거리다 몸이 기억하는지 금세 손이 자동으로 움직입니다. 두줄로 매듭을 묶을 때 처음 시작매듭이 다른 부분보다 두꺼워 고민이었는데 매듭이 맺어지고 나면 첫 매듭을 풀어 마무리하니 이제야 마음에 듭니다. 매듭실의 길이들과 매듭 개수도 다시 기록해 두었습니다. 지금 익숙한 것들이 어느 순간 낯설어지는 경험은 별로 유쾌하지 않지만 천천히 받아들여야 할 때 같습니다.Thu, 25 A…